페르조나
페르조나란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탈춤처럼 어떤 사람이 노인의 탈을 쓰면 그는 노인 역할을 하며 왕의 탈을 쓰면 왕이 되는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에서 이 말을 고른 것입니다. 탈, 가면이라 하면 우선 도덕적인 위선을 연상할 사람이많겠으나 결코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탈이 탈을 쓴 사람의 개성이 아닌 것과 같이 페르조나라 하면 실상이 아니라 가상이라는 뜻도 포함됩니다. 페르조나는 집단정신의 한 단면입니다. 그것은 흔히 개성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가면 입니다.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인데 마치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페르조나는 참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입니다. 그는 어떤 이름을 받아들이고 칭호를 얻고 지위라든가 또 이것저것을 남에게 내보입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이기는 하나 그 사람의 개성에 비추어 보아서는 이차적인 현실, 그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참여한 타협형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페르조나는 하나의 가상입니다. 농담삼아 규정하자면 이차원적 현실입니다. 융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령 그 많은 집단정신 가운데서 그사람이 무엇을 받아들였는가에 개인적인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가 받아들인 것이 집단정신의 일부라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페르조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남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더 크게 착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페르조나에 입각한 태도는 주위의 일반적 기대에 맞추어 주는 태도이며, 외계와의 적용에서 편의상생긴 기능성콤플렉스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환경에 대한 나의 작용과 환경이 나에게 작용하는 체험을 거치는 동안 향성됩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페르조나에 해당하는 말은 체면, 얼굴, 낯과 같은 것입니다. 어른의 체면, 남편의 체면, 교육자의 체면, 선생의 체면, 숙녀의 체면 등 그것은 모두 어떤 사회집단이 그 집단의 특수한 성원에게 한결같이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상의 규범이며 제복과 같은 것입니다. 체면이라는말을 사명, 역할, 본분, 도리 라는 말로 바꾸어도 같은 설명이 성립됩니다. 의사의 사명, 학생의 본분, 아들 된 도리, 주부의 역할이라고 할 때 이것은 그 개인의 살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보다 일단 의사라는 사람, 학생 집단, 아들과 주부의 위치에 한정된 집단적 직업상과 그 지켜야 할 규범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히 봐올 낯이 없다. 얼굴을 들 수 없다. 어디다 낯을 들고 다니느냐는 등의 표현은 체면상실의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으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이것이 그 개인의 갈 길, 그 개인이 개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일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과 낯은 남에게 보이는 얼굴이며 낯이기 때문에 집단적인 일반적 윤리를 대변하는 하나의 가면입니다. 영동가법의 일반성을 표시할 때 모름지기 무엇이란 등의 말을 잘 씁니다. 남자란, 여자란 이래야한다고 할 때 그것은 페르조나를 강조하는 말이 됩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하고 시작하는 주장은 모두 그런 집단규법입니다. 국민 된 도리, 민족의 일원, 선배로서, 상사로서, 아랫사람으로서 할 때도 모두 페르조나의 차원을 말합니다. 페르조나는 집단공유의 보편적 원칙이기 때문에 때로는 어느 집단에만 적용되고 다른 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 행동양식입니다. 인류학자나 문화정신의학자가 관심을 가지는 문화적 특수성 이라고들 부르는 것이 여기에 관련됩니다. 한국 사회는 특히 페르조나가 강조되는 사회이며 개인이 싫든 좋든 그것과 동일시하도록 강요하거나 어느 틈엔가 동일시되어 있어 진정으로 개성적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