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원형
내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고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가. 남이 나의 허를찔러 비판하면 화부터 냅니다. 남이 잘났다고 칭찬하면 우쭐해집니다. 남이 나를 못났다고 하면 위축돼서 정말 못났다고 믿습니다. 어느 경우나 우리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못 보고 있고 정말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의 자화상에 사로잡혀서 그는 장님이 됩니다. 바꾸어 말해서 나가 의식에만 매달리면 그가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마음의 세계, 무의식을 보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자신을 못보고 저 잘난 맛에 또는 못났다는 생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반조각으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전체로서 살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그자신으로서 살지 않고 일부로 마저 참여시켜 주기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아가 의식에만 집착하면 무의식은 대상기능을 발휘하여 의식에 포함되어 전체가 되려고 합니다. 무의식 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심중에는 언제나 사람으로 하여금 전체가 되게끔 하라는 원동력이 움직이고있는 것입니다. 그가 사회와 이웃과 다른 사람의 투사와 기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의 탈이나 자아의식에 집착하여 좁고 경화된 역할 속에 기계적인 인생을 보내지않도록 그로 하여금 주어진 전 생명력을 불태우도록 촉구하는 무의식의 힘, 그 힘은 자아의식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자체의 목적에 의하여 의식에 작용합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자신의 전체가 되도록 자극합니다. 이것이 바로 음이 담하는 자기원형입니다.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하나인 그의 전부를 말합니다. 이것이 원형으로 다루어지는 이유는 전체가 되고자 하는 힘이 원초적으로 인간에게 조건지어져 있다는 견해에서 온 것입니다. 인간의 무의식에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전제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현대의 정신의학자들이 환자를 환자로서만 보지 말고 전체의 인간으로 보기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전체성은 학자들이 가진 인간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융에게 전체란 의식뿐 아니라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 이상에 말한 무의식의 모든 속성을 포함한 전체입니다. 전체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란 분열을 지양하고자 하는 경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 일방적으로 의식만을 고집하면 자기로부터 멀어지며 결국 무의식과의 의식적인 관계가 상실됩니다. 그것은 두 개의 정신세계의 분열을 뜻합니다. 무의식은 이러한 단절상태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단절된 마음을 이으려고 애씁니다. 흔히 사람들이 정신적 위기에 처해있을 때 자기원형상이 출현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의 소외와 단절, 그것은 바로 우리가 병 이라고 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병 이니 장애니 하는 것은 또 분열을 극복하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병의 고통 속에서 자기와의 일치가 실현되고 그가 부분으로서의 생에서 전체로서의 생을 누릴 수 있게 될 때 병은 사라지고 거기에 또한 병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와의 일치, 정신적 해리의 극복은 고통을 수반하는 하나의 창조 과정이며 결코 편안한 상태에서 이루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쩔수 없이 받아야 하는 고통의 쓴 잔이기도 합니다. 자기란 글자 그대로 그 사람 자신을 말합니다. 어느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의 전체를 말하다는 뜻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성과 같은 말입니다. 이 개성은 의식에 나타나 있는 자아의 일회성이나 특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무의식을 통튼 전체로서의 그 사람의 전체 성품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전부 입니다. 그 사람의 본성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 자신이 되게끔 하는 능력이 바로 자기원형의 기능입니다. 있는 그대로 즉 여여하다는 뜻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의 개념과 비길 수 있습니다. 혹은 불성, 법신이 모두 같은 뜻을 가지고 있고 하나인 마음, 일심에 도달하고자 하는 불교적 추구가 모두 자기의 합일에의 지향과 같은 길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만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하나인 마음이란 일반적인 인간의 마음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