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능과 특징
꿈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일어나는 특수한 정신기능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꿈꾸기 전날이라든가 그 이전에 그 사람이 생각한 것, 본 것, 기분, 인상 같은 과거의 경험과 관계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꿈꾼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꿈꾼 뒤에도 어떤 특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와 미래에 작용합니다. 꿈은 일반적으로 관념표상의 연결이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되살리기 어렵습니다. 꿈을 하나도 안꾼다는 사람이 많지만 대개는 꿈을 꾸면서도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어떤 꿈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현실의 사건과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비록 그 꿈이 현실에서 알어난 일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그 꿈에는 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종로 거리를 걸어가는데 김 선생이 저만큼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반가위서 그리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초등학생이 길에 뛰어들더니 지나가는 택시에 부딪히는것을 보았다. 꿈을 꾼 사람은 이 꿈을 꾸고 그가 전날 종로 거리를 걸어다녔고 직장동료인 김 선생과는 친한 사이인데 며칠 전에 점심을 같이 먹은 일이 있고, 교통사고에 관해서는 신문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그래서 아마 이 꿈을 꾼 모양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과 일치한다고 해서, 그러니 이 꿈을 꾼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속단이다. 꿈을 꾼 사람은 그 전날 다른 길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왜 꼭 종로 거리가 꿈에 나타난건지를 알아야 합니다. 김 선생과는 점심을 같이했는데 어째서 꿈에서는 거리에서 만나는가. 그는 신문에서 여러 기사를 읽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교통사고 기사, 그것도 초등학생이 택시에 부딪하는 장면이 나타났는가. 그리고 며칠 전부터의 모든 경험 가운데서 어째서 서로 다른 경험이 이게 결합하여 꿈의 내용을 이루는가. 이 모든 물음이 제기될 때 우리는 이 꿈이 현실에서 나온 꿈이니까 의미가 없다고는 단정지을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서 이 모든 꿈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그 많은 기억 속에서 몇가지의 특수한 표상만을 꿈이 선택하며 특수하게 엮어 나가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것이 덮어놓고 무의미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잠작할 뿐이고, 이런 짐작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이런 짐작을 바탕으로 한 꿈의 해석이 꿈을 꾼 사람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깨닫게 할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달려 있다. 꿈은 잘자는 동안에 기억되는 것인 만큼 무의식적인 내용을 상당히 많이 표현하고 있다. 꿈에서의 나 조차도 의식의 나와 많이 다르다. 단지 꿈의 나는 어렴풋이나마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꿈을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의식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그때그때의 의식의 상황에 의하여 선택되고 연상과정에 흡수된 이떤 내용들이다. 꿈은 현재의 의식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무의식 속에 배열된 것이며 의식의 상황을 보충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꿈이 의식의 무엇을 보충하고자 하는지를 알려면 꿈을 꾼 사람의 의식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뜻에서 꿈과 객관적 현실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 꿈의 이해에서 일차적으로 종요한 것이다. 감추는 것이 아니고 가르친다고 한 융의 말은 바로 꿈속에는 감추여야 할 것, 이를테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성적 욕구나 과거의 상처보다도 우리의 의식에 대하여 무언가를 알려 주는 무의식의 메시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하는 지향성, 또는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목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꿈을 인과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목적론적으로도 보아야 한다. 이것은 꿈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정시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태도이다. 인과론적 입장에서 꿈을 본다면 꿈의 내용을 과거의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로밖에 보지 않게 된다. 이런 관찰방법은 그 해석의 단일명백성을 목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고 고정된 상징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목적론적 관찰방법은 변화하는 꿈의 상 속에서 변화하는 심리적 상황을 발견하고자 하므로 고정된 상징해석을 일삼지 않는다고 융은 말한다. 꿈은 단일성보다 다양성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융은 꿈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을 의식에 대한 보상기능 이라고 한다. 꿈의 보상작용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의 시대에도 단순하나마 발견된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환자가 꿈 속에서 즐겨 먹는 음식을 현실에서 제공하였는데, 그는 그것이 바로 꿈꾼 사람의 현실에서 결핍된 음식이라고 생각하였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 한국의 속설도 이와 비슷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의식이 너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면 광에서는 게으르고 거짓말하고 탐욕스럽고 성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할 만한 행위를 한다. 반면에 의식이 너무 나태하면 꿈에는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군대가 나타나서, 꿈을 꾼 사람의 자아를 뒤쫓아 오거나 혹은 그 군대와 행동을 같이한다. 이것은 모두 의식에 모자란부분을 보충하고 의식이 너무 외곬으로 나아가는 것을 수정하려는 무의식의 보상가능의 표현이다. 물론 꿈이 모두 의식의 반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의식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무의식적인 보상의의 정도, 보상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의식의 태도가 일방적이지 않고 적절하면 무의식은 특별히 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경우 꿈은 현실의 자아의 태도와 비교적 일치하게 되고 별로 대립적인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꿈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의식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서 꿈의 내용과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